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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니의 회화: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자의 가상 실험

 

글. 김주눈


 

내가 있는 곳 여기가 어딘지

언제부터 시작돼온 건지

아무도 내게 말안해

가르쳐 주지 않아

눈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이

너무나 작다는 걸 알았어

 

달언니와 말랑씨, <안녕! 디지몬> 가사 중

소년만화에서 주인공은 간혹 반신이거나 반요이다. 이 인물은 인간성을 절반 정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불완전함과 동시에 가장 인간적인 특징들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만화 속 주인공은 항상 신처럼 더 완벽해지려고, 인간다움을 벗어날 때까지 자신을 단련하지만 마지막에는 신보다 인간 동료를 택하며 모험을 떠난다. 같은 내용이 대중매체에서 변주된 채 반복된다. 인간이 바라는 인간성에는 변하지 않는 특질이 있는 듯하다. 

1.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평범함.  

2. 작은 것이나 소외된 존재를 버리지 않는 마음

3. 고난과 역경을 견뎌나갈 수 있을 정도의 강인함

고니의 회화에서는 위와 같이 반신이나 반요 같은, 인간을 닮은 형태의 존재가 항상 등장한다. 이 존재는 어떤 그림에서는 등신대가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면서 사람 같았다가 요정같이 변한다. 종종 이 존재는 지난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그렇다고 마주한 상황에 절망스러워하거나 완전히 좌절해버리지 않는다. 어쩌면 그림, 흰색 평면이라는 세계는 그가 만들어낸 가상공간일지도 모른다. 그는 흰색 가상공간에 인간이라면 헤쳐나가기 어려운 조건들을 소환함으로써 아주 작은 서사를 만들어 낸다. 

그가 가상공간에 시련의 조건으로 가져오는 것은 바람, 물, 불, 흙 등 자연물의 기본 형태를 띠는 것들이다. 이 기본 형태들은 고니의 그림 속에서 구원의 상징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느닷없이 고난의 상징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고니의 <손을 모아 물 주기> 그림을 보면, 인물이 잘린 당근에 생명 혹은 희망의 물을 흘려보내려고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바다를 딛는 사람> 드로잉 연작에서는, 물이 견뎌야 하는 ‘불완전한 땅’의 모양새를 하고 있다. 이는 마치 어제는 잔잔하고 아름다웠던 강이 새벽 내에 홍수로 범람할 수 있다는, 세계의 불안정성을 지시한다. 

고니는 소재로서의 기본단위인 자연물이, 다채롭게 분위기를 바꾸기 때문에 그림 속에서 다른 상징으로 쓸 수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이는 고대 철학자 엠페도클레스가 만물의 근본 요소인 흙, 공기, 물, 불이 사랑과 투쟁으로 그 크기가 시기별로 달라진다고 주장한 것과 비슷해 보인다. 두 사람이 이론적으로 세계에 대해서 취하는 맥락은 비슷하지만, 고니는 위 자연 요소들로 인간의 삶을 시험해보고자 하는 태도를 보이는 점에서 실험가에 더 가깝다. 한 존재가 자신을 대상으로 삶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불안정성 위에서 안정을 구가해보려는 존재는 화면에서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가? 혹은 그것이 이 존재에게 언제까지 유효할 것인가? 얇은 트레이싱지에 그려진 <바람으로 가는 사람>에서 이 존재는 간신히 폭풍을 뚫고 나가 안전해지려고 하지만, 다시 바람을 맞는 방향으로 간다. <바다를 딛는 사람>에서도 마찬가지로 이 존재는 고난 속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시험과 고행을 견디면서 바다라는 불안정 위에 안정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반복되는 고난-안정-고난의 연속은 그림 속에서 덧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로 같은 결과에 이른다. 그 속에서 인물의 표정에는 언뜻 지루함이 비친다(이미 찾던 해답이 인물 안에 있기 때문인가). 결국 인물이 바다를 온전히 딛는 장면이 나오지는 않지만, 인물의 표정이 암시하듯 그는 이미 답을 몸으로 익혔기 때문에 바다라는 시련을 갈무리할 준비를 한다. 

고니의 작업에서 인간이 시련을 뚫고 나아가는 모습을 가장 스펙터클하게 보여준 작업은 그의 첫 개인전 옥상에 설치된 <바람사람>이다. 휘날리는 천에 가벼운 색연필을 눌러 그린 그림을 그려 매달아 놓은 모양새가 위태로워 보이면서도 강인해 보인다. 팽팽히 당겨진 줄과 모래주머니의 무게감이 흰 천을 매달려 나부낄 수 있게 만드는 점이 작품의 내용과 일치하기 때문에 다른 작품보다 물질적으로 설득력을 가져다준다. 얇은 바탕재에 색연필을 꾹 눌러 그린 그림들이 보여주는 필사적인- 제스쳐는 그가 가벼움을 나타내기 위해서 고민한 무게감을 나타내기에, 좀 더 진실한 느낌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이는 그림의 내용과 작가의 태도가 일치할 것이라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신이 죽었다는 말 이후 다시 유령 신이 부활하게 된 현재의 세상에서 인간성의 가장 빛나는 부분을 간직하고자 하는 고니의 그림은 시대적 상황 앞에서 특이성을 갖는다. 인간성과 희망이 냉소와 허무에 가려진 2020의 해에는 인간이 견디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계속 타당한 방법으로 제시될 수 있는 것일까. 섣부르게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에 고니는 인간적 태도를 기틀로 두고 이 이후의 문제를 다루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림 속 가상의 인물은 시련을 극복하는 실험을 하면서 완벽한 상태가 되는 것이 결국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받아들이게 된 듯 보인다. 이후 그림 속 인물은 소년만화의 주인공처럼 마지막 회에 인간의 손을 잡으며 다른 형태의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한다.  이 여행이 점차 인간 세상으로 고공비행하는 것일지는 미지수이지만, 작가가 태도와 또 다른 깨달음들을 한데 모아 인간 세상에 나눠 줄 시점이 오기를 희망한다.

202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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