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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밀푀유는 생각보다 단단하다.

고니, 허담 2인전: 우리는 흔들리는 땅에 집을 지었다

챔버1965 2023.11.24 - 12.17

글. 김맑음


 

이따금씩 이 전시 공간에 서있으면 누군가는 간헐적으로 바닥이 흔들리는 진동을 느낄 것이다. 사실 이것은 근처를 지나는 지하철에서 오는 진동인데, 공간을 구성하는 건물이 오래되다 보니 이 흔들림은 주변보다 더 크게 다가온다. 하지만 한편 이런 흔들림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땅 속의 사정을 모르는 누군가에게는 그 진동이 분명 또 다른 스케일의 감각으로 다가갈 것이다. 흔들리는 땅은 불안감을 낳고, 그것에 대한 감각은 점차 안정되지 못하고 증폭되기도 한다.

평탄화가 되지 못한 채 흔들리는 이 땅을 들여다보자. 지하철과 같은 사실적인 내용을 차치하고, 더 아래로 내려가게 된다면, 우리가 무엇을 마주할지는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한 불가지(不可知) 상태로 있는 지층 어딘가 도달할 때, 전시 《우리는 흔들리는 땅에 집을 지었다》는 우리가 보는 그 지층의 풍경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이 전시는 겹겹이 있는 지층들 사이에서 하나의 켜를 열어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바리케이트처럼 벽이 된 고니 작가의 회화에는 테이블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견고하게 쌓인 테이블의 구조적인 형태는 안정적이라고 표현하기에 꽤 충분한 조건이다. 하지만 동시에 테이블 사이 사이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각자 다른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면서 다소 기이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총을 가지고 있던 인물은 잠에 들고, 성냥은 쌓였다가 흩어지고, 불빛은 밝아졌다가 이내 어두워진다. 그리고 테이블 어딘가 있었을 법한 커피잔과 신발은 건물 보와 박공 부분에 마치 고대 그리스 부조 장식처럼 등장한다. 집 구조가 품을 수 있는 전형적인 이야기처럼 보이지 않기에 이는 시간의 흐름이 보이는 건물 구조와 함께 그 어딘가 있었을 이야기를 추적하게 만든다. 어떤 누군가가 잠을 청하지 못’했’고, 길어지는 밤의 시간은 흔들림과 함께 이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 때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익숙한 소재들은 이내 한 시기를 지나간 유물처럼 인식되게 된다. 내러티브가 진행되면서 마침표가 계속 찍히고 있지만 우리는 한 끗 차이로 그 마침표를 따라잡지 못하고 놓치는 상황인 것이다. 그렇다 보니 유적지의 발굴 상황처럼 우리는 마주하는 것들을 파악하고 그것에 상상을 덧붙여야 비로소 형체를 만들 수 있게 된다. 벽이 된 테이블과 그 테이블 사이 사이의 이야기들은 정리되지 못한 채 상상과 함께 점차 등장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전시장 마당과 한 켠을 채우고 있는 허담 작가의 조각상들은 마치 역사 속에서 전해내려 오는 이야기에서 한 번쯤 들었을, 무덤에 함께 들어가는 토우 군집을 떠올리게 한다. 이들의 정확한 명칭은 ‘먀먀토우’로 작가는 마치 하루의 일과처럼 토우를 손으로 계속 만들어왔다. 이 토우를 만드는 과정은 작가가 형체를 예상하고 만드는 조각이나 소조, 혹은 모델링을 통해서 더 정교하게 만들어지는 3D 프린터 방식과 다르게 제작 과정에서 우연성이 가장 많이 들어가게 된다. 하루 일과의 습관처럼 만들어지는 조각은 때때로 작가의 눈이 아닌 손으로만 형체가 만들어졌고, 특히나 한 손에 쥐어지는 듯한 크기이기에 그 우연성은 더더욱 증폭된다. 말하자면, 일상처럼 토우들은 계속 만들어지고, 군집을 이루면서 세계가 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은 일종의 사변적 역사의 일부가 되는 ‘우연한’ 과정을 겪는 것이다. 실제 동물의 형체였던 것은 상상 속 무엇인가의 형체도 함께 지니게 되고, 점차 진화하듯이 이들의 미세한 변화는 시기로 구분된다. 작가의 입장에서 이러한 반복적인 작업은 ‘작가의 창작’이라는 개념을 가장 잘 드러내기도 한다. 그런 과정 중에서 작가에게 의도치 않았던 기이한 지점이 발생했다. 바로 그들 중 하나가 떨어졌을 때이다. 상상 속 내러티브가 구성하고 있던 존재론적 견고함은 이 떨어진 머리에서 갑자기 오래된 시점의 것이 되어버렸다. 사실 이는 작가의 관점에서는 지나간 시점의 것이지만, 동시에 토우를 관찰하는 누군가에게는 새롭게 발굴해야 할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손에 잡히던 토우가 떨어지고 증폭되면서 전형적 구조에서 벗어날 때, 형체에 상상을 덧붙이는 그 기점이 드러나기도 하는 것이다.

 

이 상상의 유적지 가운데에서 느껴지는 흔들리는 땅은 이제 지하철의 진동 아래에 더 무엇인가를 찾게 하는 순간이 될 것이다. 밀푀유처럼 얇게 쌓인 지층들은 사실 그것 자체만으로는 너무나 손쉽게 바스라질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지층에서 발견하는 것들에 이야기를 붙이고, 줄거리를 만들고, 인물들을 만들어낸다. 이 양면에는 전시되는 작업들처럼 무엇인가 일어난 것을 다시금 추적하면서 상상을 덧붙이는 방식과 함께 한다. 말하자면 상상의 밀푀유는 손쉽게 바스러지기에는 많은 내러티브들이 그 구조를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우리가 이러한 상황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상상의 밀푀유는 대부분 밤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안정된 시간의 흐름상 유년기를 지나오면서 우리는 더더욱 흔들리는 땅에 둔감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이 밀푀유 한 겹을 펼쳐 본다면, 그 유적지의 풍경은 시점이 지나갔기에 덧붙일 이야기가 더 많아진다. 지나간 시간과 갱신되는 네러티브는 흔들리면서도 견고하게 남아있다.

 

이 글은 그렇게 과거에 쓰여진 글을 인용하는 각주 없이 작성해본다. 밀푀유처럼 쌓인 상상과 그것이 남긴 터에는 각주가 들어가기에 생각보다 단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흔들리는 땅에 작가가 집을 지을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2023.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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